문화콘텐츠 전문기업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는 2024년부터 2025년까지 2년에 걸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립미술관인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Johannesburg Art Gallery)의 소장품을 선보이는 대규모 프로젝트인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를 선보인다.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는 경주에서 시작해 부산과 제주를 거쳐,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2년에 걸친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143점의 그림은 총 9개의 섹션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 중 첫 번째 섹션의 주제는 <필립스 부부>이며 마지막 섹션의 주제가 <20세기부터 오늘날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예술 현장>인 점은 주목할 점이다. 필립스 부인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미술관의 설립자이다. 그녀는 ‘문화적으로 척박한’ 아프리카 대륙에 예술 공간을 만들기 위해 영국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을 모델로 요하네스버그 미술관을 건립하게 된다. 그녀가 만든 미술관에는 마지막 섹션에 이르러, 자국 예술가의 작품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네덜란드와 영국으로부터 식민 통치를 받은 역사가 있다. 17세기부터 20세기 초인 1910년까지로 그 기간은 매우 길었고, 식민지 독립 이후에도 식민지 시기 제도화된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해 국민 간 균열을 해소하는 데에 부침을 겪게 된다. 그러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식민지배를 했던 나라들,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넘어온 유수의 작품을 보는 경험을 제공한다. 요하네스버그 미술관은 앞서 언급한 인종차별로 개관 후 수십 년 동안 아프리카 작가의 작품을 소장할 수 없었다. 1940년 구매한 제라드 세코트의 그림을 처음으로 32년 동안 다른 아프리카 작가의 작품 구매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1986년 큰 변화를 맞이하며, 오늘날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는 남아프리카 대표 예술가들의 주요 작품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식민 통치국의 그림을 식민지였던 땅에 세워 미술관을 세우고, 자국의 예술품도 마침내 세워낸 요하네스버그 미술관의 시도는 예술의 공간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내가 작품만이 아닌 작품이 위치한 공간성에 대해 가장 극적으로 느꼈던 경험은 런던의 영국박물관, 그리고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였다. 두 박물관 모두 규모와 크기에 있어서 세계에서 손을 꼽는 곳임에도, 나는 그 공간들에 들어갔을 때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방대한 작품의 수 때문이기도 하지만, 식민과 약탈의 전리품으로 하강한, 그 작품들의 맥락에서 온전히 탈각해 버린 존재들을 마주하는 것이 역겨운 기분마저 들게 했기 때문이다. 즉, 같은 작품이라도, 그것이 전시되는 맥락과 장소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를 생성할 수 있다. 그것을 한국에서 진행하는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는 이어받는다. 내한 전시 혹은 공연이 이루어질 때 그것은 보통 서울에서 시작하거나 서울에서만 진행이 된다. 반면 <모네에서 앤디워홀>은 상대적으로 문화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지역들에 먼저 전시를 시작하여 서울에서 끝을 낸다는 상징성을 지닌다.
9개의 전시관
143점의 그림이 9개의 섹션으로 나뉠 수 있다는 것은 섹션의 구분이 매우 세밀하다는 것이며, 미술사의 다양한 작품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의미기도 하다. 섹션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Ⅰ필립스 부부>, <Ⅱ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 <Ⅲ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미술>, <Ⅳ인상주의 이전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 혁명으로>, <Ⅴ인상주의를 중심으로>, <Ⅵ인상주의 이후>, <Ⅶ20세기 초반의 아방가르드>, <Ⅷ20세기 컨템포러리 아트>, <Ⅸ20세기부터 오늘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예술 현장>. 각 섹션마다 달라지는 벽지의 분위기도 화폭을 담아내는 데 적절히 활용되었다 느껴졌다.
미술사의 흐름에서 예술가와 그들의 예술 작품은 주어진 공간과 시대에 맞추어 변모한다. 그 의미를 재생산하고 조롱받았던 혁신은 역사에 남게 된다.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이루어진 18세기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그리고 인상주의의 흐름. 인상주의 이후 현대 미술로 이어지는 흐름을 대표 작품들로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전시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전체 전시의 중간쯤 위치했던 모네의 <봄>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이다. <봄>은 모네와 친구들이 빛의 순간을 담고자 했던 그들의 작품을 거부한 살롱에 반대하여 독립 전시회를 시작하기 전해에 그린 작품이다. 모네의 그림은 당시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으며 수익을 내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예술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대하여 고민하며 분투했고, 그것은 이어지는 후기 인상주의와 그 너머의 시간까지 영향을 미친다.
<Ⅷ20세기 컨템포러리 아트>, <Ⅸ20세기부터 오늘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예술 현장>에 다다르면 그림의 방식은 보다 도발적이고 직관적으로 변해감을 느낄 수 있다. 아프리카 땅에 세워진 미술관에 아프리카 출신 작가의 그림이 제대로 걸리기까지 백 년이 걸렸다. 아프리카 출신 미술가들은 자국에 만연한 폭력과 인종 차별에 대하여 직설적인 그림으로 답한다. 초상화는 아주 오래된 그림의 장르임에도 그것의 대상이 흑인이 되는 순간 낯선 것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우리가 딛고 있는 아주 오랜 시간을 우리는 전시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을 통해 빠르게 헤쳐나가 마침내 현재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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