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황혼까지-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전시는 스웨덴국립미술관과 마이아트뮤지엄이 협업하여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명작 79점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스웨덴-대한민국 수교 65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되는 것으로, 19세기에서 20세기로의 전환기에서 북유럽 국가에서 두드러진 예술 발전과 북유럽 특유의 화풍이 정립된 배경을 조명한다. 이러한 예술 발전의 경위를 하루의 새벽에서 황혼까지의 시간대로 비유하여 전시한 큐레이팅은 관람객이 빠르게 북유럽 작품세계로 몰입할 수 있게 하였다.
19세기 말 보수적인 북유럽 예술계에 반기를 들었던 예술가들은 당시 국제적인 예술의 중심지였던 프랑스로 떠났다. 조국을 떠난 그들이 프랑스에서 만난 것은 ‘빛’이었다. 그림 도구가 간소해지면서 야외의 햇빛을 그대로 담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움을 마친 뒤 돌아온 조국에는 ‘빛’이 없었다. 북유럽의 하늘을 거의 매일 우중충했으며 사람들의 옷차림은 프랑스의 그것처럼 화려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프랑스처럼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보이는 대로 그린다는 예술사적 시도는 조국에 돌아오자마자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절망하기보다 주어진 조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그들의 영토에서 아름다운 미적 영감의 땅, 스카겐을 발굴하였으며 노동자와 농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었다. 또한 반대파를 결성하여 보수적인 기존 예술계에 반기를 들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여성 화가들의 예술적 시도가 변화의 시간 중 정오에 자리매김하여 있었다는 것이다. 전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안나 보베르크의 그림이 있던 곳도 이곳이었다. 큰 화폭 속에 설산은 수십 겹의 물감으로 두텁게 쌓아 올려져 있었다. 이러한 기법을 임파스토라고 한다고 한다. 유화의 깊이감에 나는 보자마자 그 산을 사랑하게 되어 그 앞을 떠날 수 없었다.
19세기에는 이미 훌륭한 여성 예술가들이 많았으나 결혼 후 그들에게 허락되는 영역은 집의 앞마당까지였다. 그마저도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예술 작업을 이어갈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안나 보베르크는 남편의 지원 속에서 결혼 후에도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북극 화가로 칭하며 극지방의 풍광을 담아냈다. 이름에 독일어로 산을 의미하는 베르크(berg)가 새겨져 있다니, 그녀가 로포텐의 자연 속에서 그린 설산의 풍경을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히 남긴 것은 그녀의 운명이었나 보다.
여성에게 지워진 한계는, 그들이 함께해야 했던 결핍은 역설적으로 예술성의 원천 중 하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성들은 한계 속에서도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으며 한계가 있기에 그것을 우회하거나 뛰어넘는 전략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방은 풍경화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이 방의 풍경화들은 첫 번째 방의 풍경화들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첫 번째 방의 그림들이 우중충한 북유럽의 하늘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면 세 번째 방의 그림들은 다양한 빛의 하늘을 품고 있었다. 민족 낭만주의라고도 불리는 미술사적 시도는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여 그림을 그렸으며 감상자에게 전달될 분위기와 느낌을 중요시했다.
나는 강가를 따라 자전거를 타는 것을 좋아한다. 자전거를 타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속도는 붙고, 덥다고 느끼기도 전에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부딪힌다. 그때마다 풀과 물의 비릿한 향이, 낮 동안 달궈진 도로의 냄새가 온몸에 가득 찬다. 그때 보는 길가의 꽃은, 나무는, 구름은, 사람들은 어쩐지 더 아름답다. 가끔은 멈춰서 너무나 아름다운 그 꽃을 찍어도 본다. 하지만 소용없다. 내가 봤던 그 꽃은 거기에 없다. 세 번째 방에 가득 찬 풍경화를 보며 나는 그런 기분을 느꼈다.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아서 보존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림들을 보면서 본 적 없는 풍경을 그리워했다.
혁신이 쏘아올린 혁신의 빛은 아늑함이 되어 가정을 환하게 비춘다. 마지막 방에는 스웨덴의 국민 화가라고 하는 칼 라르손의 그림들이 있었다. 초기에는 프랑스 유학의 흔적이 있는 유화를 위주로 그렸지만, 그의 말년에는 소박한 집과 아이들이 옅은 수채화로 그려져 있었다.
나는 마지막 방을 돌아보면서 덴마크의 휘게 문화를 떠올렸다. 한국어로 직역기는 어렵지만 휘게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박하고 따뜻한 행복을 의미한다. 물론 내부에 존재하는 따스함은 달리 말해 외부에 대한 무관심과 폐쇄성을 의미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이를 춥고 척박하며 인구밀도가 낮은 환경에서 일상을 유지하는 북유럽인의 노력으로 이해했다. 마지막 방에 가득한 어린이들과 가족의 행복한 모습은 그렇기에, 화가들이 발견한 북유럽다움일 것이다. 어린 아기를 안고 있는 여성. 흔치 않은 햇빛이 가득한 날. 그래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날들이 있을 것이다. 왜인지 이 그림을 엄마에게 주고 싶어 엽서를 샀다.
*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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