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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몽마르트의 별이 되다-툴루즈 로르텍: 몽마르트의 별 [전시]

전시

by 세모나는 2024. 10. 5.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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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아트뮤지엄은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 미술의 거장 앙리 드 툴루즈-로르텍의 탄생 160주년을 기념하여 <툴루즈-로르텍:몽마르트의 별> 전시를 2024년 9월 14일부터 2025년 3월 3일까지 개최한다. 로트렉은 프랑스 귀족 가문 출신 미술가로 벨 에포크 파리 밤 문화를 특유의 매혹적이고 도발적인 필체로 표현한 석판 화가였다. 화가, 판화가, 삽화가로 활동한 그는 당대 예술의 중심지였던 몽마르트에서 다양한 예술을 흡수하며 독창적인 양식을 개척했다.

마이아트뮤지엄은 로트렉의 생애를 따라 전시를 총 4개 구역으로 나누어 전시한다. 이 중 마지막 장은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라는 이름으로 로르텍과 같은 시기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예술가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구역이다. 이 글에서는 로르텍의 작품에 더 집중하기 위하여 전시의 1~3부에 집중하여 서술을 전개하고자 한다. 4부의 다양한 포스터들은 직접 방문하여 관람하기를 권한다. 

제1부 보헤미안



19세기 말 프랑스는 정치 경제, 과학기술, 문화예술의 융성으로 화려한 시기를 맞이했다. 미술계에서는 일본 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간결한 선과 평평한 색 면을 특징으로 하는 자포니즘이 유행하고, 새로운 예술 양식을 지향하는 아르누보 운동이 성행하였으며, 산업화와 석판 인쇄술의 발전으로 포스터 미술이 부흥하였다. 이 시기 파리 몽마르트에 모여들었던 수많은 예술가 중에는 앙리 드 툴루즈-로르텍이 있었다.

그는 귀족이었지만 장애로 인하여 귀족 사회에 온전히 편입되지 못하였다. 대신 그는 188년대 중반 몽마르트에 정착하고 작업실을 마련하면서 몽마르트의 유명 인사들이었던 무용수, 연예인, 카바레 가수와 친분을 맺게 된다.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의 중심에는 무용수와 카바레 가수가 들어섰다. 의뢰받은 포스터 내에서 그는 석판화를 활용하여 상업 디자인과 고급 예술 간의 경계를 허물어간다.


<사진가 폴 세스코>는 관람 중 낄낄대며 봤던 작품이다. 폴 세스코는 로르텍의 친구이자 사진작가였는데 그는 여성을 밝히는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는 사진 촬영을 목적으로 자신의 스튜디오에 부른 여성 모델들을 성적으로 유혹하곤 했는데, 이 그림은 그러한 세스코의 면모를 은유적으로 담아냈다. 화려한 모델은 촬영 중인 세스코를 등지고 달아나려 눈치를 보는 와중에 세스코는 카메라에 들어가 다리만 삐죽 나와 있다. 로르텍은 풍요로워진 사회 속 발전해 나간 유흥 문화에 자신을 맡기고 독창적인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제2부 휴머니스트



누구에게 보여주더라도 로트렉의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람 그 자체라고 말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섬세한 필체와 생동감 넘치는 표정, 도발적인 색상의 활용은 관람객이 액자 너머의 인물에게 단번에 이입하게 만든다. 동시대 인상주의의 영향 속에서도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집중한 로트렉의 작품세계는 <제2부 휴머니스트>에서 돋보인다. 단지 인물화를 그렸기에 사람이 보인다는 것이 아니다. 로트렉의 작품에 담겨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살아감이다. 크로핑 기법(크로핑은 이미지를 잘라내 특정 부분만을 강조하거나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여 전체적인 구성에서 집중도를 높이는 기법으로 일본 목판화의 구성으로부터 차용되었다)으로 주변 사물과 인물이 생략된 속에서도, 즉 사실주의가 아님에도 그가 담은 인물들에게는 사실성보다 높은 진실성을 느낄 수 있었다.


파리에서 새로운 반항을 일으킨 로트렉은 1895년부터 1897년까지 살롱 데 상 갤러리와의 인연으로 전성기를 맞이한다. 로트렉은 이 시기 일반적인 포스터 외에도 대중이 쉽게 구입할 수 없는 고가의 석판화집을 출간하기도 하였는데, 1896년 살롱 데 상 갤러리에서 선보인 <엘르>는 로트렉의 판화집 중 걸작으로 손꼽힌다. ‘엘르’는 프랑스어로 ‘여인’을 의미하는데 이는 로트렉인 1892년에서 1895년 사이 파리 사창가에서 지내며 매춘부의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그린 판화집이다. 나는 매춘부들을 그린 판화집의 이름이 대명사 ‘여인’인 것이 좋았다. 실제로 그의 묘사는 매춘부를 단순히 성적으로 묘사하거나 은유하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창가에서 일상을 보내는 여성들의 삶을 담아냈다. 잠을 자고 세수하고 옷을 입고 일을 하러 나서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로트렉이 갖고 있는인간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제3부 몽마르트의 별



내가 고흐 그림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1889)이다. 해당 그림은 고흐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그린 것으로, 고흐는 정신병원 창문 틈으로 보이는 덤불을 그리고 또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고단했던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조차 자신이 그릴 수 있는 것을 모두 뱉어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던 그에게, 그가 남긴 그림 앞에 한참 동안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한편, 비교적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었던 마티스가 말년에 눈이 잘 보이지 않자, 색종이를 찢어 만들어낸 달팽이 앞에서는 ‘풉’하고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누군가의 마지막 앞에서 우리는 해석하기를 멈추지 못하는 모양이다.

몽마르트는 로르텍에게 예술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매춘과 음주로 취약하게 만든 곳이기도 하였다. 1897년부터 로트렉은 알코올 중독과 잦은 매춘으로 병원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1901년이면 그는 다리가 마비되고 손에는 경련이 일어나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그리하여 죽기 직전 그가 한 것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관람했던 서커스를 색연필로 그려낸 일이었다. 해당 연작은 손바닥 정도의 크기의 그림이 수십 장 붙어 있었는데 동물과 사람이 엉켜 있는 그림 하나하나는. 바로 보고 그린 것이 아닌 20년도 더 된 기억에 의존하여 그린 것임에도 생동감이 넘쳤고 담겨있는 이야기에는 재치가 넘쳤다.


연작 중 <자유로운 말>을 보면 서커스에 사용되기 위해 일렬로 대기 중인 말들을 볼 수 있는데 그림의 중앙에는 축 처져 있는 서커스 관리자가 있다. 그는 말을 통제하기 위한 채찍을 들고 있음에도 오히려 그 채찍에 종속이라도 된 듯 힘이 빠진 모습이다. 관리자의 그림자는 사람의 형상이기도 말의 형상이기도 하다. 그림에서 자유로운 자는 그 누구도 없음에도, 이 그림의 제목은 ‘자유로운 말’이다. 작은 스케치 하나에서도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의 관점 세속적인 그의 포스터에서 왜 우리가 인간성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남는다.

벨에포크는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을 의미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보통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의 시대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으로 부가 팽창하고 사회경제문화 수준이 급속도로 상승하였던 시기이기도 하다. 로르텍은 1901년 병으로 사망한다. 36년이라는 짧고도 화려한 그의 삶은 벨에포크 자체를 닮아있다.

몽마르트 언덕에 앉아



두 번의 파리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하나 고르라면 몽마르트 언덕에 위치한 사크레쾨르 대성당 앞 계단에 앉아 시내 전경을 바라본 때였을 것이다. 유럽 여행을 다니며 각 도시의 크고 작은 성당을 방문하였지만, 사크레쾨르 대성당은 지금까지도 따뜻한 풍광으로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두 번의 모두 해가 질 무렵 방문하였는데 완전히 어두워진 뒤 내려간 시가지에서 우연히 마주했던 물랑루즈는 들어가지 않더라도 그 화려함에 압도되었던 곳이었다. 전시 내내 울려 퍼지는 샹송과 툴루즈가 재현한 파리의 밤을 보며 몽마르트에 올랐던 때를 떠올리게 하였다.

벨에포크의 뜻은 앞서 말한 대로 ‘아름다운 시절’이다. 아름다운 것이 시절이 되는 까닭은 그것이 보편적인 상태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20세기 초까지 번영했던 유럽 사회는 세계대전과 대공항을 맞이했다. 누군가에게는 좋기만 했던 벨에포크는 국외 식민지에 대한 약탈과 국내 노동자에 대한 탄압으로 가능했던 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벨에포크는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시기가 아닌, 코 앞의 붕괴를 저당 잡고 불안에 싸여 술이나 마실 수밖에 없는 때로 기억되는 것이다. 실물적 팽창이 금융적 팽창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자본의 이윤이 일시적으로 상승하지만, 이 시기는 오래 지속될 수도 자본주의의 일반 상태가 되지도 못한다. 따라서 벨에포크는 아름답기만 한 시절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벨에포크의 예술가 툴루즈의 화려하고 도발적이며 인간적인 그림들은 시대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것 아니겠는가. 전시장에서 더 많은 로르텍의 작품을 만나보기를 바란다. 

 


*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2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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