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주년을 맞이한 대한민국 대표 창작뮤지컬 <베르테르>를 1월 17일(금)부터 3월 16(일)까지 디큐브링크아트센터에서 만나볼 수 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베르테르>는 정민선 작곡가의 아름다운 음악, 고선웅 작가의 섬세한 극본, 조광화 연출가의 섬세한 해석으로 한국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지고지순한 스토킹
뮤지컬을 보기 전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중학생 때 읽고 남긴 글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때도 나는 베르테르를 한심하게 생각했고, 그것을 확인하니 웃음이 났다. 연민의 함유량이 높은 핀잔의 글이었다. 그것은 종국의 자기파괴로 수렴되는 그의 발걸음은 사랑이 될 수 없음에도 그의 죽음이 당대 유행까지 된 것(‘베르테르 효과’)은 절대로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의 글이기도 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하여 시놉시스의 골격을 공유하는 <베르테르>도 비슷한 난점을 공유한다. 그것은 지고지순한 사랑이 주제인 <베르테르>에는 도대체 사랑이 없다는 것이다. 넘버를 살펴봐도 그러하다. 따스한 멜로디로 대표 듀엣인 ‘우리는’은 베르테르와 롯데가 친구가 되는 순간을 다룬다.
그리고 친구가 되어
어린 시절의 옛날 얘기 나누면
잠깐 사이 우리는 친구
그 둘이 가장 친밀했던 순간은 친구였을 때이다. 이 외에는 혼자 사랑에 차오르거나, 혼자 차오르는 사랑으로 받는 고통에 대한 넘버들뿐이다. 도저히 사랑을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를 사랑 이야기로 기억하는 것은 베르테르라는 인물이 주동 인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베르테르>의 근본 난점은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못하는 베르테르가 독자 혹은 관객이 관점과 정서를 이입할 수밖에 없는 주동 인물이라는 점이다. 베르테르 혼자 착각으로 시작한 사랑을 스스로 사랑으로 믿으며 이미 약혼자가 있는 롯데에게 직간접적으로 매달리는 방식의 사랑을 관객은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베르테르가 사랑한 롯데는 뮤지컬의 주인공이지만, 주동 인물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롯데는 베르테르를 만난 이후 모든 선택권을 상실하게 된다. 롯데는 우연히 만난 베르테르가 자신과 같은 시를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를 좋은 친구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고, 그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본인을 사랑하는 베르테르에게 롯데는 큰 충격을 받고, 충격은 이내 죄책감이 되어 신께 자신의 잘못을 고한다. 베르테르의 사망으로 무대는 마무리되나, 계속 살아갈 롯데에게 베르테르의 죽음은 그와 함께 한 시간 중 가장 큰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베르테르의 애끓는 사랑이 정작 롯데에게는 스토킹임에도, 유독 베르테르의 입장만이 극의 중심이 된다. 그렇기에 <베르테르>가 변함없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관객은 평소라면, 일상이라면 도저히 이입하기 어려운 인물과 함께하며, 판단의 혼란을 경험할 것이다. 유머를 포함한 연출이겠으나 커튼콜 시 롯데와 함께하는 것은 베르테르가 아닌 알베르트라는 점에서 우리는 극 중 가장 미쳐있는 인물에 이입하는 경험으로 사랑을 보는 셈이다.
고통받는 젊은이에게는 죽음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독일어 원제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이다. 독일어 Leiden은 고통, 고생, 고뇌 등으로 해석되는데,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슬픔이 되어버렸다. 나는 베르테르가 젊어서 슬프기보다, 젊어서 고통받는 이야기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및 <베르테르>를 독해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베르테르가 소유한 젊음과 그것의 결과로써의 고통을 살펴봐야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베르테르>에는 베르테르가 직접 행하는 사랑은 없다. 대신 극의 전개를 위하여 베르테르의 분신으로서 먼저 사랑의 비극을 맞이하는 인물, 카인즈와 그의 여주인 간의 에피소드가 주요 사건으로 활용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카인즈의 이야기를 <베르테르>의 극중극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베르테르는 롯데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 롯데가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운명의 벽 앞에서 베르테르는 절망한다. 한편, 베르테르가 오르카의 술집에서 만난 정원사 카인즈와 그 여주인의 사랑을 가로막는 것은 신분이다.
즉, 베르테르가 막힌 벽 앞에서 혼자만의 고뇌로 파멸에 이르는 인물이라면, 카인즈는 베르테르가 가지 못한 벽을 한 겹 넘은 인물이다. 그리고 베르테르는 사회 통념상 불가능한 사랑을 염원하고 이루어낸 카인즈에 자신의 처지를 이입한다. 카인즈에게 고백할 것을 설득한 것이 자신이기에 그 이입의 정도는 더욱 높아진다. 고백 이후 카인즈는 자신의 여주인이 그녀의 오빠에게 폭행당하는 것을 보고선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살해한다. 평소 선량하고 성실했던 카인즈와 알고 지낸 마을 주민들은 카인즈의 무죄를 호소하고, 베르테르는 그 선봉에 선다. 오빠의 폭행은 이미 동네에서 모두 알던 사실이기에 카인즈를 사람들은 연민한다. 카인즈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한 행동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지만, 자신을 처벌하는 법의 심판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런 혼란을, 법을 통해 정리하는 알베르트는 극 중 질서를 상징한다. 카인즈의 살인 사건은 알베르트와 베르테르 간의 갈등이 최초로 가시화되는 계기이다. 이전까지 알베르트는 롯데 근처를 배회하는 베르테르를 견제하기는 하였으나, 아내의 친구로서 예의를 갖추어 행동했다. 그러나 결혼 이후에도 이어지는 베르테르의 집착과 살인사건을 둘러싼 견해차는 베르테르와 알베르트가 서 있는 곳을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그 둘의 갈등이 표면으로 올라오는 계기로 작동했다. 그것은 이전의 갈등을 모두 포함한다는 점에서, 단지 약혼자와 연모하는 자의 차이만이 아니다.
이는 총을 대하는 두 인물의 차이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베르테르가 자살에 사용한 총은 알베르트의 집의 전시용 권총이었다. 베르테르에게 알베르트는 총을 가리키며 총을 가진 힘과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절제, 그것의 총합으로서 권위를 설명한다. 베르테르는 전시용 권총을 실제로 사용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 총이 향한 방향은 자신의 관자놀이였다. 정리하자면 극에서 알베르트는 권위와 질서, 즉 사회의 규율을 담당하며, 베르테르는 사회의 규율과 자신의 욕망을 조율하지 못한 인물, 어쩌면 청년을 담당한다. 청년이 어른이 되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욕망을 구조에 맞추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 방법은 순응, 저항, 무관심 등의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베르테르에게 한정하여 예시를 들자면 롯데와의 관계를 단념하기, 롯데의 마음을 얻어내 불륜의 방식으로라도 사랑을 쟁취하기, 사랑과 삶에 초연해져 욕망을 내려놓기의 방법이 있겠다.
그러나 베르테르는 사회로의 적응을 도저히 하지 못하는 인물 혹은 거부하는 인물이었다. 어떤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고통만 받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작성한 메모에서는 베르테르의 자살을 이해할 수 없다고 기록했으나, 이 상황에서 베르테르에게 허락된 것은 죽음뿐임을 이제는 생각한다. 그 죽음조차 본인의 것이 아니라 질서를 상징하는 알베르트의 권총으로 롯데가 우정의 징표로 준 리본을 묶어 사용했다는 점에서 베르테르는 지독히도 자신이 불화한 세상을 벗어날 수 없다. 그의 죽음까지도 사회의 질서에 포함되기에.
꼭 무대에서 만나야 할 작품, <베르테르>
소설이, 영화가, 무대가, 오직 그것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우리는‘좋다’라고 짧게 말하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뮤지컬 <베르테르>는 반드시 뮤지컬로써 무대에서 만나야 할 작품이다. 뮤지컬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의 훌륭함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보다는 복합적 예술로서의 뮤지컬, 치밀하게 계산된 무대 세트와 조명 전체 주제에 부합하는 멜로디와 가사, 적절한 연기를 포괄한다.
나의 경우 대형 뮤지컬은 자주 보기 어려운 만큼, 보기 전 예습을 넘버와 영상으로 하는 편이다. 관극 이전 들었던 <베르테르>의 넘버는 나에게 잔잔하게 느껴져 흥미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나 무대가 시작되자마자 내가 ‘잔잔하다’라고만 느꼈던 넘버들이 전체 주제곡을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흐름을 느끼자, 개별 노래들마저 사랑하게 되는 경험을 했다. 주인공 외의 중심점이 눈에 보인다는 것도 좋았다. 마을 주민들의 안식처인 오르카의 술집, 롯데의 집에서 일하는 하인들, 마을의 소식을 전해주는 집배원, 카인즈의 사랑, 환한 꽃밭과 별이 빛나는 밤하늘 모두 필요한 곳에 있었다. 25주년을 사랑으로 맞이하는 뮤지컬답다. 추운 겨울을 지나가고 있다. 비록 오늘은 춥더라도 따뜻함을 목전에 둔 바로 지금, <베르테르>를 무대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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