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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오늘도 묵묵히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틱틱붐 [뮤지컬]

연극&뮤지컬

by 세모나는 2025. 1. 1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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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불꽃처럼 살다가 요절한 조나단 라슨(뮤지컬 렌트 원작자)의 자전적 뮤지컬 <틱틱붐>이 2024년 11월 16일 프리뷰 공연을 시작으로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1990년 조나단 라슨에 의해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선보인 워크숍은 1인극이었으나 2001년 3인극으로 재정비되어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2024년 대극장 무대에서 공연될 이번 버전은 5명의 앙상블이 추가되어 음악의 무게감이 늘었다. 정글짐으로 구조화되어 무대 중앙을 빙글빙글 도는 세트는 존의 집과 아르바이트 장소, 마이클의 집, 회사가 되며 존의 불안과 친구들과의 관계를 리드미컬하게 표현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오늘도 묵묵히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대립해서 이해하고 싶지 않다. 그 대립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개인이 선택하는 종류의 사건이 아니다. 감정의 동기도, 선택의 계기도, 혹은 그러한 분할마저도. 그렇다면 그 대립은 허상이다. 그럼에도 꿈과 현실이라는 주제가 던져졌을 때, 각자는 타협하며 생활을 지속한다고 인식하게 된다. 그러한 타협의 기회가 모두가 가질 수 있는 일은 아님에도, 그리고 실제로 그 과정이 단지 타협은 아님에도. 그런 타협의 구도가 우리에게 익숙한 까닭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라도 나의 의지가 우선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존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인물이다. 꿈을 좇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환희와 숭고한 고난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틱틱붐>이 1990년 뉴욕을 배경으로 함에도 지금까지 너른 공감을 받는 까닭은, 하고 싶은 일을 밀어붙이는 과정의 구질구질함을 대놓고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이 아닐 때, 감수해야 하는 곤란함은 이런 것들이다. 뒤틀려버린 생애주기, 일상적인 빈곤, 가까운 이들의 비난과 의심, 자기 확신의 붕괴, 삶의 선택지 축소.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선정의 과정보다 폐기의 과정에 가깝다. 선택에는 다른 선택지를 포기하는 것 역시 포함된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밀어붙이는 과정은 현재뿐 아니라 가깝고 먼 자신의 미래까지 담보로 하는 일이 되기 일쑤다.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포기하는 것의 목록은 길어진다. 존은 여전히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으며 사랑하는 애인 수잔과의 미래조차 함께 그리기 어려워한다. 많은 부분은 돈에 기인하지만, 뉴욕을 떠나는 것과 같이 돈에 기인하지 않는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서사 구조상 뮤지컬 작가를 지망하여 웨이트리스 알바를 계속하는 존과, 예술의 꿈을 접고 광고회사에 다녀 좋은 집과 차를 소유한 마이클은 대립되는 것으로 보인다. 존의 입장에서 마이클의 경제적 안정은 자신의 불안정한 처지를 극대화하는 상대이다. 동시에 재능 있는 예술가인 마이클이 왜 자신과 같이 예술을 계속하지 않는지 답답함을 느끼는 상대이기도 하다. 마이클은 자신이 택한 것들에 후회가 없다. 춤이 좋아 뉴욕으로 왔고, 돈이 필요해 광고회사에 다닐 뿐이다. 광고회사는 자신과 같은 예술적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곳이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경력을 쌓아간다. 알바에 지쳐가는 존을 위해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미팅 기회를 잡아주기도 한다. 존은 슈퍼비아 워크숍을 마무리하고 마침내 뮤지컬 작가로서 데뷔한다. 데뷔하지 못했더라도, 존의 삶이 실패가 아니기를, 불치병에 걸렸음에도 광고회사에 다니는 마이클의 삶이 포기가 아니기를 바란다. 

틱, 틱, 틱…. 붐!

폭발적인 열정과 남다른 영감, 운명적 이끌림으로 구성되는 삶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 삶을 산다고 해도 이러한 요소들은 먹고 사는 일까지 해결해 주지도 않으며, 그것들의 지속은 개인 삶을 높은 확률로 바싹 마르게 한다. 어떤 삶을 살든, 우리는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최선인지 확신할 수 없는 채 우리는 손에 겨우 잡히는 긴 하루와, 짧은 한 달을 살아갈 뿐이다.

틱, 틱, 틱…. 존은 요즘 유달리 시계 초침 소리가 크게 들린다며 불안을 토한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침대에 누워 몸을 비틀다 보면 세상의 모든 소리가 커다랗게 들리는 경험을 한 적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존은 세상의 소음으로 가득 찬 낮의 시간에도 시계 초침 소리에 삶이 짓눌린다. 그것은 존이 이룬 것 없이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음의 방증일 수 있다. 혹은 그것은 남들에게는 소음조차 되지 못하는 시계 초침 소리가 존에게는 온 세계가 된다는 것, 즉 일반적인 세계에서 탈각되어 자신만의 세계, 구렁텅이, 우물 등을 파는 인물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무엇이든 뮤지컬 <틱틱붐>에서는 남들이 못 듣고 존을 미치게 했던 시계 초침 소리가 모두가 들을 수밖에 없는 폭탄 소리가 되어 돌아옴을 암시한다. 각자의 방을 가득 채우는 자신만의 초침 소리에 괴로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 괴로움이 혼자만의 것으로 남지 않기를 바라는 듯이. 


*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3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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