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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야외로 나온 뮤지컬-WONDERLAND PICNIC 2024 [공연]

음악&공연

by 세모나는 2024. 5. 1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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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이란 장르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우리는 왜 어떤 이야기를 노래로 들을 때 더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내가 인생에서 본 첫 뮤지컬 공연은 수능이 끝난 후 받은 첫 알바비로 세종문화회관에서 큰마음을 먹고 예매한 <영웅>이었다. 좋았지만, 동시에 큰 감흥은 없었기도 하다. 내가 뮤지컬을 더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이후에 우연한 계기로 뮤지컬 넘버들을 즐겨 되면서였다. 그때의 나는 <지킬 앤드 하이드>를, <엘리자벳>을, <웃는 남자>를, <스위니 토드>를, 인제야 <영웅>을, <노트르담 드 파리>를, <레미제라블>을, <프랑켄슈타인>을, <마틸다>를, <위키드>와 <레베카>를 줄거리도 모르는 뮤지컬들을 노래로 먼저 접하게 되었다. 줄거리를 몰라도 나는 이미 화자에게 공감해 버린 것이었다.

뮤지컬의 주인공은 주로 고난을 겪었고 가요에서 일반적으로 다루지 않는 구체적인 속마음을 노래로 담담히 담아냈다. 눈으로 읽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맥락도 모른 채 나는 함부로 화자들에 공감했고, 어쩐지 비감이 온몸을 감싸버릴 때의 나는, 으레 그런 노래를 뮤지컬 배우가 된 것처럼 진지하게 흥얼거리면서 집으로 걸어왔다. 그러면 흘러갈 수 있는 마음의 고임이 있었던 거 같다. 음악이 먼저 공감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경험이었다. 나의 첫 뮤지컬 <영웅>은 충분히 즐기지 못했지만 이후 종종 경험했던 뮤지컬들은 훨씬 재미있어졌다.

그래서 이번 <원더랜드 피크닉 2024>는 내가 뮤지컬을 좋아하는 대상으로 받아들였던 첫 마음을 기억하게 해주는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무대에서 배우분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지하 공연장을 벗어나 밝은 지상에서 벌어지는 뮤지컬 음악 공연은 뮤지컬이 가진 여러 힘 중 하나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뮤지컬이라는 서사 구조의 요소로서의 음악이 아니라 하나의 완성체로서의 노래를 말이다. 


<원더랜드 피크닉 2024>는 5월 11일과 12일 양일에 걸쳐 한강 노들섬에서 진행되었다. 따뜻한 잔디밭 위에서의 피크닉 같은 공연을 컨셉으로 하여, 돗자리를 무대 앞에 펼쳐두고 공연을 경험하는 축제와 같은 형식이었다.

그렇지만, 미흡한 현장의 아쉬움


토요일은 하늘이 뚫린 듯 비가 내렸고, 일요일은 마찬가지의 이유로 햇빛이 쏟아졌다. 더운 거야 어떻게든 견딘다고 하더라도 비가 오는 날은 진창이 된 잔디밭 위에서 우산도 쓸 수 없이 보내야 했다(시야가 방해된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피크닉을 생각하며 양일권을 구매한 사람들에게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기상 조건은 주최 측의 책임이 아니지만, 비 예보가 일주일 전부터 있었음을 생각했을 때 환불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은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비를 막아줄 천막이나 시설 설치도 고려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조치도 없었다.

해가 쨍쨍한 일요일은 그러면 나았는가. 비를 맞지 않은 것은 감사한 일이었지만, 시설 규모에 비해 과도하게 수용된 이용객으로 인하여 제대로 앉을 곳도 마련되지 않았다. 돗자리 크기도 규제되지 않았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많아질 수밖에 없는 이용객을 제대로 통제 인솔하지 못했다. 사실 인솔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가 아니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예매권을, 시설을 고려하지 않고 과도하게 판매한 잘못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소풍이라는 말은 왜 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게 소풍인가? 제대로 자리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다닥다닥 붙어서 다리도 뻗지 못하는 것이 소풍이라면 소풍을 가지 않는 편이 나을 뻔했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이렇게 앉지도 못할 거면 지정석을 마련해주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나가는 길에 노들섬 한 편에 굳이 티켓을 끊지 않고 돗자리를 펼쳐 음악을 즐기던 사람들이 승자라는 생각을 지을 수 없었다. 그래, 음악은 원래 저런 마음으로 즐겨야 하는 것이다.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가방 검사의 방법이었다. 공연장 내에는 일회용품을 포함한 음식물 반입이 불가능했다. 해당 조치는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다수가 밀집하는 자리인 만큼 무책임한 쓰레기 투기 문제를 방지한다는 의도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공연장 안에 앉아 있을 때는 나를 뺀 모두가 일회용품으로 식사하고 있었고, 입구에서 금지한 캔맥주와 과자를 먹고 있었다. 이유가 궁금해져 공연장을 둘러보니 뒷문이 있었고, 거기에는 간이 음식 판매 부스 3~4곳이 있는 공간이 나왔다. 해당 음식 부스는 아마 주최 측에서 계약한 판매점들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해당 공간이 막혀있는 곳이 아니라 바로 야외로 이어져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뒷문은 가방 검사를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과자와 맥주, 일회용품을 사서 뒷문으로 들어왔고 먹었다. 제재는 없었다. 일회용품을 반입하지 말라고 해서 해당 규칙을 지킨 것이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행사에 참여하며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공연은 모두 훌륭했다. 음향과 배우들의 노래, 소소하게 준비해 주신 준비 멘트까지. 아는 넘버가 나올 때는 흥분했고 모르던 넘버가 나올 때는 귀 기울여 들었다. 그렇지만 피크닉이라는 말에 너무 큰 기대를 해서일까, 혹은 내가 기대했던 것이 총합으로서 경험이었기 때문일까. 현장에서의 여러 조치는 행사를 방해할 정도로 아쉬웠던 순간이 있었다. 이 행사장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소에도 연극과 뮤지컬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조치들은 더 아쉬움으로 남는다. 극장의 노래들이 다시 야외로 나올 때, 조금 더 많은 고려와 배려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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