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공연] 지브리 페스티벌 (2025, 아르츠심포니오케스트라) - 너를 태우고 우리는 나아갈 거야

음악&공연

by 세모나는 2025. 4. 14. 09:29

본문


지브리 음악을 선보이는 공연 <지브리 페스티벌>이 2022년 11월 예술의 전당과 전국투어에 이어 다시 한번 관객들을 찾아온다. 2025년 4월의 <지브리 페스티벌>에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제곡을 지브리 오리지널 OST와 클래식 음악을 바탕으로 편곡한 주제곡을 만나볼 수 있었다.

소리에는 부피가 있다


콘서트홀에 앉았을 때, 그제야 그것이 나에게 처음이었음을 깨달았다. 언어의 존재를 견디기 어려울 때 나는 종종 잘 알지도 못하는 클래식을 듣곤 했다. 그리고 종종 조성진의, 손열음의 피아노 연주를 침대에 누워 들을 수 있는 세상에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첫 곡이 시작되는 순간 그 경험들이 가짜였다는 생각을 했다. 진짜 가짜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가짜였다는 점에서 억울했다. 콘서트홀은 음악을 위한 공간이었고, 각 악기에서 나온 소리들은 합쳐지고 흩어지며 공기에 부피를 차지했다. 익숙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주제곡들이었지만, 청음은 완전히 달랐다.

첫 곡은 이웃집 토토로 OST인 ‘바람이 지나가는 길’이었다. 백 번도 더 들었을 노래다. 그런데도 달랐다. 소리에는 부피가 있었다. 소리의 부피만큼 연주의 부피가 있었다. 연주자의 호흡 한 번에는, 손짓 한 번에는 그 사람의 인생 대부분이 담겨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합쳐보니 몇백 년 치의 소리였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덩어리가 된 음악에서도 각 악기의 소리는 세세히 보였다. 피아노에서는 구슬 소리가 났다. 하프에서는 요정의 소리가 났다. 악기는 바람과 나무와 재앙과 별의 소리를 다 낼 수 있었다. 한 사람의 평생이 담겨있는 소리가 나에게 두껍고 무겁게 다가왔다. 

너를 태우고, 우리는 나아갈 거야


<지브리 페스티벌>의 마지막 곡은 <천공의 성 라퓨타>의 ‘너를 태우고’였다. 일본에서 1986년에 개봉한 <천공의 성 라퓨타>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첫 작품이다. 첫 작품이어서인지 작화의 움직임에서 약간의 어색함을 보이기도 하는데, 나는 주인공 소년 파즈가 돌진하듯 ‘우다다다’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이후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주요 주제인 전쟁과 평화, 인간 문명과 자연이라는 키워드도 비슷한 온도로 ‘우다다다’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첫 작품의 대표 주제곡 ‘너를 태우고’가 <지브리 페스티벌>의 마지막 곡이 되었다. 2시간의 공연을 마무리하기에 적절한 선택이었다.

<지브리 페스티벌>은 총 2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지브리의 음악을 클래식 음악과 결합하는 새로운 시도를, 2부에서는 지브리 오리지널 OST를 선보였다. 1부에는 송영민 피아니스트의 해설도 함께였다. 리스트와 <이웃집 토토로>, 비발디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드뷔시와 <원령공주>. 음악 간의 결합 방식은 해설을 통해 상세히 설명받을 수 있었다. 송영민 피아니스트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사랑받는 지브리 오리지널 OST를 클래식과 접목해 편곡한 이유를 더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을 접할 수 있기 위함으로 설명했다. 길게는 몇 시간씩 이어지는 클래식 음악을 다수의 시민이 편안하게 향유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렇기에 익숙한 지브리 주제곡을 통해 다가가고자 했다는 것이다. 


지브리 주제곡 공연이기에 내가 큰 부담 없이 이 자리에 앉아 있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 덕에 나는 콘서트홀에도 처음 오게 된 것이었다. 오케스트라가 콘서트홀에서 만들어내는 음감에 이미 감동을 받은 직후였던 나는 송영민 피아니스트의 설명에 공감이 갔다. 흔쾌히 무언가 해보게 만드는 힘은 강력한 것이다. 나는 콘서트홀에 또 가고 싶어졌다. 그러려면 클래식을 들어야 하니까,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천공의 성 라퓨타>.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인물은 선과 악으로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내 편과 내 편 아님도 명확하지 않다. 나의 삶에서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그러한 흘러감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천공의 성 라퓨타>의 파즈와 시타가 운명을 함께 하고 그것이 애정이 가는 이유라 생각한다. 너를 태우면, 이제 우리는 우리가 된다. <지브리 페스티벌>에 다양한 이유로 왔을 사람들과 우리는 간다. 


*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5102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