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뮤지컬

[연극] 소년에게서 온 편지 : 수취인불명 - 우리는 전쟁을 모른다

세모나는 2025. 5. 16. 17:28


전 세계 수만 명의 아티스트들이 모여들어 공연을 펼치는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에서, 2022년 초연을 시작으로 3연속 퍼스트어워드를 수상한 연극 <소년에게서 온 편지 : 수취인 불명>이 2025년 오리지널 캐스팅으로 한국에 상륙한다. 연극 <소년에게서 온 편지 : 수취인 불명>은 스토리텔링과 광대극을 기반으로 한 2인의 피지컬 연극이다. 연극은 베트남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한 소년들의 성장과 현실을 담아낸다.

우리는 전쟁을 모른다

나는 전쟁을 모른다. 전쟁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은 모두 전쟁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뿐이다. 또 사람이 죽었다 한다. 죽은 사람의 목숨은 셀 수 있는 물건이 되어 쌓여갈 뿐이다. 2023년 10월 이후 팔레스타인에서는 5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총합 백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정확한 수치도 아니다. 추측일 뿐이다. 그 많은 죽음을 보고도 우리는 무엇도 느낄 수 없다. 가늠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회복할 수 없는 부상을 입은 사람들, 집과 고향을 잃은 사람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고통은 죽지 않아 계산되지 않는다.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 평화라는 것은 너무 어려운 말이다. 전쟁에 반대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그런 말을 하나도 깨우치지 못했다. 연극에는 전쟁에 참여한 두 명의 소년이 나온다. 두 명의 소년은 전쟁을 배경으로 어른이 된다. 미국 국기에 대한 선서는 반복되어 변형된다. 대통령은 신을 대신하고, 죽음이 번영을 대신한다.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것이 신이라면, 자국민과 타국민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그가 바로 신일 테니까. 미국의 침략 전쟁을 감히 문제 삼지 않는, 본인의 생명을 내놓는 어린 소년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전쟁의 실재를 감히 상상해 본다.

마녀가 알려준 어른이 되는 법

연극 <소년에게서 온 편지 : 수취인 불명>은 관객을 헛갈리게 한다. 무대 위의 두 인물이 ‘전쟁놀이’를 하는 스카우트 소년인지, 실제로 전쟁에 참전 중인 군인인지 명확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경계가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맨발의 배지가 가득한 스카우트 복장. 광대 분장 위에 올라간 그을음 자국은 두 배우가 잔뜩 놀다 더러워진 것인지, 전장 속에서 씻지 못한 것인지를 말해주지 못한다.

‘메뚜기’의 고민은 자신이 충분히 ‘남자답지’ 못하다는 것이다. 모든 면에서 터프함이 있는 ‘에이스’와 달리 그것은 남자 형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둘은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어른이, 그러니까 진짜 남자가 될 수 있는가 고민한다. 이때 마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저 멀리 산을 몇 개 넘어 계곡으로 빠진 뒤, 거머리에게 피를 잡아먹히면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연극 <소년에게서 온 편지 : 수취인 불명>은 선을 그리지 않고 점을 찍는다. 장면과 장면은 인과성을 갖기보다 총체성 속에 배치된다. ‘메뚜기’와 ‘에이스’는 고향에서 있었던 일, 부모님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풀어내며 뛰어논다. 그러다 전장의 공간에 닥치기도 한다. 씻지 못하는 것에 대해, 누가 죽었는지, 총은 어떻게 쏴야 하며, 수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것은 놀이인가, 혹은 전쟁인가. 관객은 혼란스럽다. 나이를 반 살 속여 교회에서 빵을 받아먹은 것이 양심에 찔려 교회에 다시 못 가게 되었다고 말한 소년이, 상대편 적을 죽인 것에는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에 당혹감을 느껴야 한다.

다시 마녀 이야기로 돌아오자. 터프한 ‘에이스’는 연극의 마지막 순간 잠이 온다고 말하며 의식이 흐려진다. 이 순간 모든 것은 명백해진다. 이것은 꿈도 놀이도 아니다. 살아있는 죽음을 향한 전쟁이다. 마녀 이야기를 다시 이어간다. 어른이 되고 싶어 산을 넘고 계곡에서 뛰어내린 소년은 어떻게 되었는가. 산을 넘느냐 이미 나이가 들어버린 소년은 계곡에서 눈을 떠서야 깨닫는다. 자신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고, 산을 되돌아갈 힘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엄마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5618